[아시아타임즈=천원기 기자]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 등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카 커지고 있다.

지하차도는 교통 체증, 소음·분진, 지역 단절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 침수, 화재 등 사고 발생 시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궁평2지하차도 참사를 계기로 서울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현재 계획된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의 안전 대책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에 기본 계획이 수립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은 영동대로 지하에 GTX 등 대중교통 복합환승센터와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고, 지상을 녹지광장으로 변모시키는 사업이다.
침수 등의 안전 이슈가 불거진 것은 지상광장을 만들기 위해 480m 길이의 대형 지하차도 설치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도심광장의 효용성, 도시경관 등을 고려한 최선의 계획임을 강조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곳은 최근 감사원도 강화된 설계기준으로 사전 침수 대책 등을 수립하도록 권고한 바있는 것처럼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 위험성이 상존한 지역으로 꼽힌다.
지하차도가 완공되면, 시간당 최대 6000여대의 차량이 통과하고, 교통 이용객이 하루 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침수 등 재난 발생 시 대형 참사로 번질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는 동부간선도로 지하차도 역시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처럼 하천변인 중랑천 인근에 위치해 있다.
중량천변은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 중 하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집중 호우로 중량천 수위가 상승하자 동부간선도로 양방향 전 구간이 전면 통제되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 중 하나인 경부간선도로의 지하화도 추진 중이다. 양재~반포 구간(6.9km)에 중심도 지하도로를 설치하고 지상에 도로와 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경부고속도로는 국내 최대 통행량을 보이는 만큼 침수, 화재, 교통사고 등에 대한 철저한 방재 대책이 요구된다.
이 밖에 경인고속도로, 경기도의 자유로, 서울의 테헤란로, 언주로, 도곡로 등도 연구용역을 진행하거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는 등 지하화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 및 지자체는 현재 추진 중인 지하차도 조성 사업 등은 철저한 타당성 조사, 설계기준 강화 등의 안전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빈도 개념 등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방재성능목표 및 설계기준 상향 등의 대책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시간당 120mm),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시간당 114mm) 등은 ‘200년 설계빈도’가 적용됐다. 설계빈도란 일정 기간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의 강수량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과거 기록상 200년 빈도에 해당하는 폭우도 근래에는 1년 빈도일 수 있다. 예외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는 과거에 통용되던 기준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2022년 8월 서울 동작구에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폭우인 500년 빈도에 해당하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렸고, 강남구에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의 200년 설계빈도에 육박하는 시간당 116mm의 비가 내렸다.
2022년 10년만에 상향 조정된 서울시의 현재 방재성능목표는 침수 취약 지역인 강남역 일대가 시간당 최대 110mm, 그 외 지역은 100mm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지하차도 조성 사업에 대한 원점 재검토 등 전향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발 욕구는 다양하고 공간은 부족한 과밀 상황에서 지하차도 건설은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위험 요인을 간과한 무분별한 개발은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하차도 내 사고는 지상에 비해 큰 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침수뿐 아니라 화재, 지진, 폭발사고, 테러 등 여러 재난 사고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구조”라고 강조한다.
교통 및 재난안전 분야의 한 전문가는 “침수 등으로 인한 재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지하공간 활용을 검토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안전’ 중시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